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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적인 남자 만나야되는 이유


가부장 사회는 무너지고 있다. 올해 에미상 시상식에서는 질 솔로웨이가 "가부장을 무너뜨리자!(Toople the patriarchy)" 라는 구호를 세번이나 외쳤다. 관객석을 보여주는데 다소 놀란 표정의 남성들의 모습도 잡혔지만 다들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아직 아시아권에서는 이정도로 적극적으로 가부장제의 붕괴를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것은 이상하게도 남성에 대한 도전과 전쟁선언 쯤으로 받아들여지기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히 시대는 변하고 있다. 시대정신은 그것이 변화하는 사회에 사는 당대의 사람들은 알아챌 수 없지만 그 시대가 지나고나면 확연히 모습을 드러낸다. 예를 들자면 미국에서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된 것은 놀랍게도 아직 100년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여성의 투표권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변혁이었다. 시대정신의 변화는 그런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가정을 꾸려간다. 남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또는 혼자 등등 여러 형태의 가정이 있겠지만 지금은 남자와 여자로 꾸려진 가정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내 주변에는 평범한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남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자기 어머니의 삶을 가엾다고 여긴다. 그 중 한 친구가 술자리에서 명절에 혼자 상을 차리고 치우느라 부엌에서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고 식사도 함께 먹지 못하는 어머니가 가여웠다는 얘기를 한적이 있다. 같이 밥먹자고 해도 됐다며 너나 얼른 먹으라며 일하는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는 얘기를 하는 그에게 한 남자가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그렇게 엄마가 안쓰러운데 넌 도와주지도 않고 밥만 먹었냐?"


다행스럽게도 잘잘못의 여부를 떠나서 다소 무안할 수 있는 지적에 그 남자애는 생각해보니 그렇다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또 놀라워했다. 나름대로 많이 배우고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그 친구마저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친구는 이후 설날에 스스로 나서서 어머니를 도와 주방일을 시작했고 지금껏 당연히 어머니만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가족들이 나눠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가정적인 남자의 표본으로 꼽히는 에릭남)



'결혼하니 효자된 남편'



이런 얘기를 우스갯소리 혹은 진지한 고민으로 늘어놓는 사람들이 많다. 분명 결혼전에는 자기 엄마 생일도 모르고 연락도 안받고 늘 싸우기만하던 남편이 결혼하니 며느리 도리를 늘어놓으며 효심을 강요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는 류의 이야기이다.


너무나 이기적인 부류의 남자다. 아마 이런 남자 중 대부분은 평생 주방에서 일하는 엄마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을 것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어머니를 안쓰럽다 여기면서도(심지어 그런 생각조차 못해봤으면서도) 한번도 자기가 나서서 그런 부당함에 대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한 적도 없고 적어도 곁에서 자기라도 함께 도우려는 행동도 해본적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제 늙은 어머니가 평생 해왔던 부당한 고생을 젊은 며느라가 이어 받아 해야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것도 자기는 아무런 피해나 고생이 미치지않는 선에서.






자기 어머니의 고생한 세월을 한없이 가엾어만하는 남자가 가정적인 남자일까? 아니다. 그런 남자는 정말로 자기 어머니의 고생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는 절절한 역할에 몰입한 그냥 꽉 막힌 남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이기적인 남자이다.


다만 그런 마음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그런 구조와 고착된 사고를 깨려는 시도를 한 남자가 정말로 가정적인 남자이다. 아버지와 더불어 가정의 또다른 한 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변두리 취급을 받는 그 역할에 대한 기대, 사고방식을 가진 자신을 포함한 가족 전체에 대한 개조를 각성하는 사람만이 정말로 가정적인 남자이다.





결혼전에 그런 변화가 미리 존재하는 가정이라면 추후 결혼을 해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때에도 고부갈등도 확연히 적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대에서 역할에 대한 재정립 과정을 통해 서로의 정서적인 독립을 받아들이고 인정했을 가능성이 높기때문이다. 또 그런 가정은 부부끼리의 사이가 돈독해서 자식에게 모든 것을 올인하고 기대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키우는 과정에서 자식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는 것과 자식의 삶을 자신의 삶에 대한 보상이나 보람처럼 여기는 마음은 전혀 다르다.

가수 로이킴이 라디오에서 읽었던 사연을 보면 우리나라 남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이런 가부장적 사고에 자연스럽게 젖어있는지 알 수 있다. 이날 사연 중에는 만삭인 아내가 친정에 가면서 그 흔한 카레나 곰국을 끓여놓고 가지도 않았다며 혼자 있는 남성이라고 치킨 쿠폰을 줄 것을 요청한다. 밥도 안차려 놓고 간 아내 때문에 불쌍하게 혼자 밥걱정 해야되는 남자라고 어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로이킴은 해당 사연을 읽고 만삭인 아내에게 그런걸 요구하는 남편도 썩 좋은 남편은 아닌 것 같다며 치킨 쿠폰을 주겠다고 하면서 드리기 싫었는데 라며 불호의 감정을 표현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어째서 여자가 며칠 집을 비우는 동안 남자의 먹을 밥까지 차려놓고 떠나야된단 말인가. 심지어 만삭의 아내인데도 말이다. 다 큰 어른이 자기 먹을거리를 혼자 차려먹거나 해결하지도 못하는게 이상한 것 아닌가. 하지만 해당 사연을 보낸 남자에게는 이런 당연한 얘기보다는 집안의 여자는 가족의 먹거리를 챙겨야되는 존재라는 개념이 더 당연했던 것 같다. (참고: 로이킴 곰국 카레 라디오 사연 http://hotpeoplestory.tistory.com/136)



아마 이런 사고가 자연스러운 남자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그게 당연한 시대에서 살았고 그런 사고를 가진 부모에게서 큰 사람들이 많기때문이다. 하지만 가정적인 남자와 이기적인 남자 사이에서는 여기서부터 차이가 벌어진다. 정말로 가정적인 남자들은 이런 생각을 발견하면 바꾸려고 한다. 아내, 혹은 연인을 동등한 지위에서 존중할 줄 알기때문이다. 이기적인 남자는 반대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든 핑계거리를 만든다. 그건 전통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는 말로 자기 영역이 침범받는 것을 거부한다. 왜냐고? 자기가 불편해지기때문이다. 상대가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은 상관없다. 또 그런 남자들은 가부장적 체계로 인해 자기가 손해보는 상황에서는 시대의 변화를 핑계로 끌어들인다.


이런 논쟁은 계속해서 나온다. 지겹고 언제 끝날지도 모를 것처럼 느껴진다. 또 누구도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처음에 말했듯 시대는 변하고 있다. 아마 100년쯤 지나면 가정에서 경제적 활동은 남성의 전유물이고 그 외의 것은 여성이 도맡아 해야된다는 사고는 완전히 구닥다리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회의 흐름에 맞춰 긍정적인 변화를 수용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남자와 여자 누구 하나가 더 손해보고 이득을 보는 얘기가 아니다. 원래 있던 역할을 서로 교환하고 분담하고 함께 짊어지는 것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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